국가유산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약 무기'... 나주 금성산서 '황자화통(黃字火筒)' 발견

박노신 기자 / 기사승인 : 2026-09-21 18: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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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연구 통해 28자 명문에 새겨진 제작 시기·무기 이름·무게·제작자 정보 등 종합 확인… 언론공개회
▲ 황자화통

[뉴스힘=박노신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화약무기 ‘황자화통(黃字火筒)’의 몸체에 새겨진 28자의 명문(글자)을 통해 만들어진 시기, 무기 명칭, 무게, 감독자의 관직과 이름, 만든 장인의 이름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확인했으며, 그 성과를 9월 21일 오전 10시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서울 종로구)에서 공개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황자화통’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다. 출토지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제작 시기와 제작 주체가 명문으로 명확히 확인되며, 화약무기 실물자료가 매우 드문 고려 말~조선 초의 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모두 우수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화통(火筒)’은 화약을 사용해 화살이나 탄알을 쏘아 내보내는 무기로, 당시 주력 무기였던 활보다 사거리와 파괴력을 혁신적으로 높인 소형 화약무기이다. 이 유물은 2023년 11월, 나주 금성산 ‘미확인 지뢰지대’에서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실시한 지뢰 탐지 중 우연히 발견됐다. 크기는 길이 23.75cm, 구경 1.66cm, 무게 1,032g으로,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소형 화기였다. 이후 3년에 걸쳐 나주연구소는 다양한 과학적인 분석과 여러 차례의 전문가 자문 등을 통해 명문을 판독하고, 이 유물의 진위와 제작 시기 및 가치 등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 왔다.

황자화통에는 모병(冒柄)에 6열 27자, 총부리(觜)에 1자를 더해 모두 28자의 음각 명문이 남아 있다. 모병의 명문은 “정사십이월일 연 황자화통 중일근십사량 감조녹사안휴보 장인석(丁巳十二月日 鍊 黃字火筒 重一斤十四兩 監造錄事安休甫 匠人石)”으로 판독되며,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는 1근 14량이다. 감독자는 녹사(錄事) 안휴보(安休甫)이고, 장인은 석(石)이다.”라고 풀이된다. 이를 통해 화기의 제작 시기(‘정사년’ 12월), 화기 명칭(황자화통), 무게(1근 14량), 제작 감독자의 관직과 이름(녹사 안휴보), 장인의 이름(석)까지 확인할 수 있다. 총부리에 새겨진 ‘팔(八)’은 별도의 화기 제작 번호 또는 관리 번호로 추정된다.

명문에 쓰인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화약무기의 명칭인 ‘황자화통(黃字火筒)’에서 ‘황자(黃字)’는 천자문 글자 순서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던 고려· 조선시대 분류 체계에 따른 명명이다. ‘감조(監造)’는 제작 감독자를 의미하며, ‘녹사(錄事)’는 관서의 실무를 담당하던 관직으로 무기 제조와 관련해 고려 말 군기감(軍器監)에 배치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도 군기감에 소속된 녹사가 무기 주조를 담당했다는 기록(『세종실록』126권, 세종31년)이 확인되므로, ‘감조’와 ‘녹사’라는 명문은 당시 국가가 무기의 감독과 제작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준다.

명문에 새겨진 정사(丁巳)년은 관련 문헌 기록과 우리나라 화약무기 발달사를 분석했을 때, 1377년(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조선 세종 19년) 두 시기로 좁혀진다. 1377년은 고려의 무신이자 무기 개발자였던 최무선(崔茂宣)의 건의로 화통도감(火桶都監)이 설치되어 국가 차원에서 처음 화약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이다. 1437년은 세종대에 화약무기 개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로, 새로운 형태의 화기가 규격화된 1445년보다는 앞선 시기에 해당한다. 현재로서는 비교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1377년과 1437년 중 어느 쪽이 실제 제작 연도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나라에서 발견·발굴된 화약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유물의 형태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한다. 황자화통은 약통의 내부가 둥근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화약과 발사체를 하나의 통에 넣어 발사하는 초기 형태의 화기에서 나타나며, 격목(擊木)을 사용해 발사 효율을 높인 조선 세종대 개량 화기의 약통 구조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에 따라 황자화통은 당시 화기 개량 이전의 이른 형식으로 추정된다.

황자화통에 대한 과학적 분석 결과, 구리(Cu), 주석(Sn), 납(Pb)을 주성분으로 하는 청동 주조품으로 확인됐다. 주목할 점은 주석의 함량을 10wt% 이내로 조절했다는 것이다. 이는 청동의 강도와 연성을 함께 확보하여 화약의 폭발력으로 화통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이다. 이러한 성분 조성은 우리나라 전통 화약무기의 성분 조성과 일치한다. 또한 미세조직 관찰 결과 제련 과정에서 남은 황(S), 규소(Si), 은(Ag) 등의 불순물이 함께 확인됐다. 이는 과거 정련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흔적으로, 황자화통이 근래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청동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유물임을 뒷받침한다.

나주연구소는 9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견 유물 속보전을 열어 황자화통을 국민에게 공개하고, 이번 발견과 조사·분석을 통해 확인된 성과를 공유할 예정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앞으로도 과학적인 조사와 진정성 있는 보존처리를 통해 나주 지역 문화유산에 내재된 역사문화적 가치를 명확히 규명하고, 이를 국민과 함께 향유하는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 나가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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